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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보는 허위의식



안녕하세요


오늘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허위의식에 대해 말씀드려 보려고 합니다.


물론, 이미 잘 알고 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래도 심리학적인 용어로 다시한번 말씀드리면 좋을것 같아 이렇게 오늘의 주제로


선정해서 여러분들께 말씀드려 보려고 합니다.


그리 어려운 이야기가 아닌, 내용이오니 끝까지 읽어주시길 바라며,


혹시라도 비슷한 인지를 하고 계시면 오늘의 글을 보시고 한번쯤 생각해 보시면 어떠실까 합니다.


그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허위의식의 개념


제가 간단하게 정의하는 허위의식이란


'사실이 아닌,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경우'를 말하는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허위의식이라는 단어는 마르크스가 제창한 개념입니다.


마르크스는 '허위의식은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시켜 더럽고 잘못된 현실을 아름답게


꾸며서 그럴듯하게 정리해 놓은 거짓된 현실 인식을 말한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속이 더럽고 부끄러울수록 허위의식은 깨끗하고 떳떳한 낱말들을 동원합니다.


좀더 쉬운 설명으로 아래 예시를 보시면서 계속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허위의식에 관한 몇가지 예시 입니다


첫번째,


옛날의 양반은 어디서도 배고프다는 말을 해서는 안됬습니다.


배가 고프다는 것은 천한것들이나 하는 소리였습니다.


그래서 대추 세개를 먹고도 배부른 척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것이 위선이자, 허위의식입니다.


어느 왕조를 봐도 정통성을 강조하는 논리가 있으며,


사람들을 만나 성씨를 물어보면 거의 모두가 자신의 성씨가 뼈대 있는


혈통이라는 논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사실일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허위의식 입니다.


허위의식이란 사실이 아닌, 내가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두번째,


이솝 우화에 배가 터져 죽은 개구리 이야기가 있습니다.


작은 연못에서 개구리 삼형제가 사이좋게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몸집에 아주 커다랗고 누런 털을 가진 황소가 떡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이른 본 개구리 삼형제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개구리 삼형제는 아빠 개구리에게 황소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몸집이 아주 크고 털이 누런 동물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 이만큼 컸니?


- 아니요. 아빠 그것보다 100배는 더 컷어요.


- 그럼, 이만했니?


- 아니요. 훨씬 더 커요.


아빠 개구리는 숨을 들여 마시고서 배를 최대한으로 부풀렸습니다.


그러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아빠 개구리의 배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착각하는 것을 허위의식이라고 말합니다.



| 허위의식에 관한 또다른 예시 입니다


위선도 허위의식 중 하나입니다.


연암 박지원의 소설 <호질>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소설 속의 북곽 선생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도학자였고,


동리지는 다섯 아들 모두가 성이 달랐다는 점입니다.


점잖은 선비 북곽 선생은 밤이면 동리지와 몰래 만나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밥, 동리지의 다섯 아들이 서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강 건넛마을에서 닭이 울고 강 저편 하늘에 샛별이 반짝이는데,


어머니 방에서 흘러나오는 말소리는 어찌 그리 북곽 선생의 목청을 닮았을까?"


이에 다섯 아들이 문틈으로 들여다 보았습니다.


과부 동리지가 말했습니다.


"오랫동안 선생님의 덕을 사모했는데 오늘밤은 선생님 글 읽는 소리를 듣고자 하옵니다."


이에 옷깃을 여민 북곽 선생은 점잖게 앉아 시를 읊었습니다.


이에 다섯 아들이 말했습니다.


"북곽 선생과 같은 점잖은 어른이 어머니 방에 있을 리가 있겠나,


우리 고을의 성문이 무너진 곳에 여우가 사는 굴이 있다.


여우란 놈은 천년을 묵으면 사람 모양으로 둔갑할 수 있다더라. 저건 틀림없이 그놈이 북곽 선생으로 둔갑한 것이다."


이에 다섯 아들은 여우를 잡겠다며 방으로 뛰어들었고,


놀란 북곽선생은 황급히 방을 빠져나오느라 그만 똥통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겨우 똥통을 빠져나온 북곽 선생은 다시 호랑이를 만났습니다.


북곽 선생은 살려달라며 무릎을 꿇고 호랑이에게 아첨하지만 호랑이는 이러한


이중 인격적인 선생의 태도를 꾸짖습니다.


북곽 선생이 호랑이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동안, 이미 날이 밝았습니다.


눈을 떠보니 호랑이는 오간데 없고 일찍 일하러 나온 농부들이 보였습니다.


북곽 선생은 하늘과 땅에 아침 인사를 하는 중이라고 거짓말을 하고는 줄행랑을 치고 말았습니다.


박지원은 이런 양반들의 행태를 꼬집기 위해 호질을 쓴것입니다.


호질은 호랑이의 질책이라는 의미 입니다.


여러 해 전에 공연되었던 연극 <대학살의 신>은 아이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지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11살 두 소년이 놀이터에서 놀다 싸움을 벌였습니다.


이 싸움에서 한 소년의 앞니 2개가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부모들이 한 자리에 모입니다.


스스로 교양인으로 자처하는 부모들은 교양있고 이성적인 대화로 시작합니다.


'톨레랑스'와 같은 유식한 단어들도 등장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나중에 욕지거리, 육탄전, 물건 집어던지기로 이어지게 됩니다.


자신들을 교양 있는 중산층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허위의식이었습니다.



| 결론을 이렇게 짓고 싶습니다


앞에서 보신 허위의식에 예시와 같이 좋지 않은 현상을 자신만 믿고 있기에


그릇된 신념이 생기고, 그릇된 신념을 사실보다 더 중요시하는 것을 허위의식이라고 합니다.


특히나, 자리가 높을 수록 자신이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그런 현상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것이 나이가 많아 아집일수도 있고, 그냥 고집이 쎄서 그럴 수도 있지만,


여기에도 분명 가지만의 허위의식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기에 나오는 현상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과연, 지금의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가고 있을까요?


저 부터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지며, 잘못은 잘못으로 인정하고 고치며,


자시만의 허위의식에 빠지지 않게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 겠습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말씀드리는 오늘의 심리학 주제 입니다.


일상생활에 조금 도움이 되시는 내용이면 좋겠습니다.


그럼 저는 다음에 다시 좀더 좋은 심리학적 주제로 여러분들을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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